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항만에서 촬영된 액션신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 때 주로 배경으로 등장 하는 대형선박을 보면, 바다에 잠긴 아랫부분이 하나같이 붉은색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선박의 아랫부분은 붉은색으로 칠하도록 무슨 법이라도 있는 걸까? 싶지만~ 사실 선박 표면에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 단계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과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선박은 바닷물과 빗물 등에 녹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 전체에 특수 방수처리가 된 페인트를 칠합니다. 그리고 선박의 하단은 방수 외 방오, 즉 오염을 방지하는 페인트도 칠하는데 여기서 침수부의 색이 결정됩니다. 이 방오 페인트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인데, 페인트 성분의 환경 상 문제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부터 사용이 규제되었습니다. 이후 대체 성분으로 ‘아산화동(Cu₂O)’이라는 성분이  주성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 이산화동은 어두운 보라색과 붉은색을 띄고 있답니다. 그래서 방오 페인트의 색도 붉은색을 띄는 게 많고 자연스럽게 대형선박의 하단도 붉은색인 경우가 대부분인거죠.

그러면 대형선박에서 방오 페인트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오랜 시간 바닷물에 잠겨 있는 대형 선박의 아랫부분에는 자연스럽게 해조류나 따개비 같은 해양 생물이 달라붙어 서식하게 됩니다. 해조류나 패류가 한번 선박에 붙게 되면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게 되는데 이렇게 많아질수록 선박의 무게가 증가하고, 매끈하던 선박 하단의 표면이 불규칙 해 지면서 바닷물과의 마찰력도 증가하게 돼버려요. 그 결과 선박의 운행속도는 느려지고, 반대로 연료 소모는 증가하게 되는 거죠. 일반적으로 연료비는 운항비용의 약 60~70% 정도인데, 선박 표면이 0.01㎜ 거칠어 질 때마다 연료소모는 약 0.3~1% 씩 더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운항비용의 절반 이상을 연료비로 사용하는데 선박에 붙은 해양생물이 증식하게 된다면~ 연료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겠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대형선박의 수명은 30년 남짓인데, 선박에 해양생물이 증식하게 되면 선박이 상하게 되고, 이는 선박의 수명단축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게다가 전 세계 바다를 오가는 대형선박의 특성상 선박에 붙은 해양생물 또한 원 서식지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퍼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유해생물이 번지게 되는 등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확률도 있습니다. 대서양에서 유입되어 우리나라 양식장에 피해를 주고 있는 유령멍게처럼 말이죠. 하지만 방오 페인트 하나로 이 모든 걸 예방할 수 있다니. 대형 선박의 하단부가 조금은 개성 없이 대부분 붉은색인 이유~ 이젠 이해가 좀 되시죠?

하지만 아산화동 또한 금속 성분의 화합물이기 때문에친환경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현재 많은 국가에서 아산화동이 함유된 방오 페인트 사용이 규제되거나 금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양환경관리법 40조」에 의해 유해성분이 함유된 방오 페인트 및 이를 이용한 설비의 사용이 규제되고 있으며, 「해양환경관리법 53조」에 따라 국제항해를 오가는 400톤 이상의 선박은 방오시스템검사에 합격하여 방오시스템검사증서를 교부를 받은 경우에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법이 시행되기 전에 건조된 선박은 유해성분이 포함된 페인트는 완전히 제거한 후, 허가받은 방오 페인트를 덧칠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산화동을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나아가 친환경 인증까지 받은 방오 페인트도 있기 때문에 방오 페인트의 유해성분으로 인한 해양생태계 위협은 다행히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왜 대형 선박의 침수부는 여전~히 붉은색일까요? 이는 다분히 시각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형 선박은 상단부와 하단부에 서로 다른 색깔을m 칠하게 되는데, 바닷물에 선박이 잠기는 높이를 통해 선적된 화물의 무게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바닷물에서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지금도 빨간색이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형 선박의 침수부가 붉은색인 건 국롤이 아니라 과학! 이제 아시겠죠? 유해성분 없는 방오 페인트로 더욱 건강해질 우리의 바다! 저 강치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